지난해에는 제자들과의 모임이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에는 중앙고등학교 초창기 제자들과의 회식이었다.
5명이 모였다.
정진석 추기경은 참석하지 못했다.
모두가 90대 초반이었다.
밖에서 보면 나와 비슷한 나이 같았다.
살아 있는 동기생보다는 작고한 제자가 더 많았다.
연말에는 같은 해에 나는 교수로,
그들은 신입생으로 연세대 문과대학에 입학한 제자들의 모임이었다.
박영식 총장과 같은 동기생들이다.
처음에는 40여명으로 출발했는데 여자 동문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되면서
점차 출석률이 줄어들었다.
이번에는 11명이 모였다.
서울과 지방 출신이 반반쯤이었다.
대구, 강릉 지역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몇 해 전과 달리 지팡이를 짚은 이도 있고,
잘 들리지 않으니까 내가 얘기할 때는 앞자리로 옮겨와 경청하기도 했다.
그래도 은사의 말씀이라고 학생 때같이 수강하는 자세가 감격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균 연령이 80대 중반쯤인데
90 정도로 늙어 보이는 제자가 있고,
70대 후반쯤으로 젊게 느껴지는 이가 있다.
학생 때는 다 같은 20대였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역시 정신력이 진취적이고 강한 사람이 늙지 않았다.
계속 공부하며 배우려고 노력하는 제자들이다.
나와 비슷한 100세 가까운 나이의 친구들도 그랬다.
김태길‧안병욱‧현승종‧송인상 등이다.
90이 될 때까지도 정신적으로 지적 의욕을 갖고 있었다.
그 방법의 하나는 취미활동이기도 했다.
둘째는 일을 계속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였다.
한 제자는 지금도 중고등학교 연합회의 총무로 있다.
누가 보든지 동료들보다는 훨씬 연하로 보인다.
한배호 교수도 80대 후반에 새로운 저서를 증정해 주었다.
이곤 서예가는 90에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인생이었다.
셋째는 인간관계를 풍부히 갖는 노인과
외로움과 고독을 해소하지 못하는 생활의 차이였다.
백년해로하는 사람이 삶의 내용과 행복도 풍부해진다.
혼자 살거나 인간관계의 폭이 좁은 사람은 생활의 내용도 빈약해진다.
철학과 제자인 한 친구는 하루도 집에 머물지 않고
여러 모임과 위원회에 참석하는 편이다.
나를 만날 때도 수첩에서 일정표를 보아야 할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
동료들이 저 친구는 바빠서 늙을 시간이 없다고 놀린다.
일과 사랑이 있는 인간관계가 필수적인 것 같다.
넷째는 좀 어색한 표현이지만
자기 인생을 자기답게 합리성을 갖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이기주의는 아니다.
이기주의자는 소유욕에 빠지게 되며 타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자신의 신념과 인격을 높여가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아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존경도 받고 90까지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유지한다.
끝으로 다섯번째는
다 같이 출발한 인생의 마라톤을 끝까지 사명감을 갖고 완주하는 사람이다.
존경스러운 인생의 승리자로 자타가 인정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함에 해답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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