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습니다. ‘한국 현대사 100년을 몸소 거쳐오면 보일까.’
우리가 어디로 걸어왔고, 지금 어떻게 걷고 있고, 앞으로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말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102세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또 어디로 가야 합니까?”
김형석 교수는 주저 없이 답을 했습니다.
‘아,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고뇌를 거듭하셨구나.’
그게 절로 느껴지더군요.
사실 김 교수를 만날 때는 주로 ‘삶과 지혜’ ‘종교와 철학’에 대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래서 ‘전공 분야’에서 살짝 벗어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속에서 이미 묵고 묵은 생각을 길어 올리듯이 이야기를 술술 풀어갔습니다.
그 이야기는 이론적이지도 않고, 사변적이지도 않고, 당파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 100년을 몸소 살아본 사람이 풀어내는
‘현장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가 깊이 새길만한 소리였습니다.
첫 질문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 물음에 김 교수는 “법치사회”라고 좌표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법치사회’가 아니라
‘뒤로 돌아가려고 하는 법치사회’라고 지적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전진하는 법치사회는 무엇이고, 후진하는 법치사회는 또 어떤 의미일까요.
김 교수는 먼저 이승만 정부에 대한 평가부터 했습니다.
그건 굵직한 안목으로 풀어내는 굵직한 평가였습니다.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권력만 잡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뭐든지 힘으로 하려고 합니다.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게 권력사회입니다.”
한국 사회를 예로 들면 어떻습니까.
“우리 사회를 예로 들어볼까요.
이승만 대통령부터 전두환 정부가 끝날 때까지 한국 사회는 권력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권력사회는 다른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법치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법이 주관해야지, 권력이 주관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이 대표적인 권력사회였습니다.
다만 노태우 정부는 과도기였습니다.
중간 단계였습니다.
대한민국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법치사회가 열렸습니다.”
김 교수가 말하는 권력사회에서 법치사회로의 변화는 ‘성숙’이었습니다.
사회적 진화이자 민주주의의 성숙을 뜻했습니다.
김 교수는 “김영삼 정부를 거쳐 김대중 정부까지 한국 사회는 법치사회로 성장했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법으로 사회를 주관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법치사회입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형석 교수는 “김영삼ㆍ김대중 정부도 법치사회이고, 문재인 정부도 법치사회다.
그런데 둘은 서로 다르다”고 평가했습니다.
궁금해지더군요. 둘 다 민주 정부이고,
둘 다 법치사회인데 무엇이 다른 걸까요.
왜 다른 걸까요.
양쪽 다 법치사회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요.
“이제 한국사회는 선진국가로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법치사회에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법치사회지만, 그걸 넘어서 앞으로 더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어디로 나아가는 겁니까.
“법치사회 다음에는 질서사회입니다.
질서사회는 법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로 굴러가는 사회입니다.
김영삼ㆍ김대중 정부는 그걸 지향했습니다.
지금은 법치사회지만 도덕과 윤리의 질서사회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다르더군요.”
어떻게 다릅니까.
“문재인 정부는 법치사회에서 다시 권력사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법과 권력으로 갈 뿐이지, 법과 질서로 가지는 못하더군요.”
김 교수는 ‘지배’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박정희 정부는 군사력으로 지배를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법으로 지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법으로 ‘지배’하면 권력사회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질서사회는 법 없이 사는 사회입니다.
그건 도덕과 윤리로 사는 사회입니다.
그걸 우리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부릅니다.
선진국가가 되려면 법치사회에서 질서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법과 질서를 연결해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법과 권력을 연결하고 있으니 아주 큰 일입니다.”
인터뷰를 하다가 저는 잠시 질문을 멈추었습니다.
법과 질서, 그리고 법과 권력. 지금 둘이 서 있는 위치가 같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그 오랜 세월, 민주화 과정에서 힘겹고 아프게 역사적 희생을 치르고
어렵사리 권력사회에서 법치사회로 올라섰습니다.
그런데 왜 돌아가고자 하는 걸까요.
도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걸까요.
그걸 김형석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가야할 길. 누가 봐도 방향이 보입니다.
그런데 왜 ‘법과 질서’가 아니라 ‘법과 권력’입니까.
“한국 사회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법치사회에서 질서사회로 올라갈 수도 있고,
법치사회에서 권력사회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도 분명하고, 그 답도 분명합니다.
정권을 위한 정치를 하면 권력사회로 다시 내려가게 됩니다.
대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면 질서사회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니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결국 무엇 때문입니까.
“운동권 민주주의는 정권을 위한 민주주의입니다.
그들은 정치 권력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 때문일까요.
결국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사랑하는 것보다 정권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해결법은 뭡니까.
“지금이라도 정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로 바꾸어야 합니다.
진보든 보수든, 누구든지 정권을 위하게 되면 법치사회가 깨지고,
국민을 위하게 되면 질서사회로 나아가게 됩니다.”
김형석 교수는
19일 서울 연희동 자택을 찾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국가를 위해 판단하면 개혁이 되지만, 정권을 위해 판단하면 개악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김 교수가 윤 전 총장에게 건넨 ‘상식과 정의’는 모두
대한민국이 법치사회에서 질서사회로 건너가기 위한 메시지였습니다.
그럼 김 교수의 메시지가 비단 보수 진영만을 향한 충고였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김형석 교수는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해 메시지를 던졌다고 봅니다.
정치적 권력을 국민보다 더 사랑할 때, 한국 사회는 결국 추락한다고 말입니다.
그게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출처: 중앙일보] 김형석 “文정부는 운동권 민주주의, 법치사회→권력사회 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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